이 글은 김규원이  필리핀에서 ‘꿈꾸는 청년 봉사단’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을 들려달라는 수원에 있는 영생고등학교 이원표 교목님께 부탁을 받고 영생고 학생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썼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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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과는 조금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19살, 고등학교 3학년 김규원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여러분의 입 장이라도 여러분 또래의,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 평범한 인상의 사람이 자 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앞에 서있다면,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라는 생각을 하고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이원표 교목님을 위해서라도 저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 제가 여러분과 조금 다르다고 말한 이유는 저는 흔히 말하는 ‘학교 밖 청소년’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말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엄연히 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대안학교’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대안학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어떤 분들에게는 생소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좋지 않은 쪽으로 인식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에 학교가 내가 관심 있는 과목을 가르쳐주고, 시험 스트레스에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되며,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면 어떨 것 같나요? 아니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오늘 이 시간에는 제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아힘나 평화학교라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 힘난다! 라고도 하지만 사실 뜻은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참 특이하죠. 이름뿐만 아니라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조금 특별한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죠. 여러분들 아무리 ‘학생이 학교에 주인이다.’ 라고 하지만, 실제로 학교를 만들어 온 것은 학생은 아니죠. 그러면 도대체 이 학교의 이름은 왜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일까요?

사실 아힘나평화학교는 그리 크지 않은 학교입니다. 중 고등 통합임에도 불구하고 총 30여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전부 모아봐야 겨우 한 반 인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매일 이렇게 작은 학교에서 적은 수의 학생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살다보니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친구끼리의 치부를 잘 안다는 것, 그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 됩니다만, 옆에 있는 사람의 신체적 결함이 무엇인지, 성격상 문제는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알게 되었을 때 나오는 진심이 비로소 친구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같이 생활을 하다 보면 굉장히 많이 싸우게 됩니다. 친했던 아이들과는 더 친해질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게 되면서 더 친해질 수도 있지만 아예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대학생활 할 때 친한 친구와는 룸메이트 하지 말라.’ 이런 경우와 비슷한 것이죠. 예를 들면 여러분 주위에 만사가 귀찮은 학생이 있잖아요? 그런 학생이 또 노는 거는 되게 좋아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도 일반 학교 생활하는데 크게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없으니까 상관이 없죠. 하지만 저희는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구요, 모든 청소나 빨래나 다 저희가 직접 합니다. 저런 사람과 함께 살아봐요. 속 터집니다. 나는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데 옆에서 노래나 듣고 있고, 같이 살다보면 화딱지가 나요. 그래서 결국은 멀어지게 됩니다.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요. 학생들이 부모님이 항상 돌봐주는 곳에서 살다가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게 되었을 때 많이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학교라는 곳은 그것이 강압적이든 아니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실제로 제가 말한 저렇게 귀차니즘 가득한 친구도 이런 생활을 계속해서 하고,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이 나아지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자립 이라는 것을 배워가는 것이죠.

이런 자립과 비슷하게도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는 학교의 주인은 학생들이라는 것입니다. 학교는 당연히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학교라는 곳의 기본적인 목적은 학생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를 선생님들과 힘을 합쳐 학교를 잘 만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희 학교에서는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시민총회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총회는 쉽게 말하자면 회의 입니다. 이 회의에는 학교 전교생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참여합니다. 이 시민총회에서는 모두 단 한 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당연한 말이지만 아주 힘든 일입니다. 특히 학생들의 수가 선생님의 수 보다 훨씬 많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저희 손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수학여행을 가는데 어떤 애는 자전거 여행을 가고 싶어 하고, 선생님들은 걷기 여행을 하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애는 그냥 평범한 수학여행을 원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부분은 선생님들이 원하는 걷기 여행을 하게 되겠죠. 하지만 이게 만약에 시민총회에 넘어오게 된다면, 저희가 어떤 수학여행을 가고 싶은지 저희 손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저희는 서른 명이고 선생님들은 다섯 명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해서 학생들이 얻어낸 부분이 꽤 많습니다. 물론 선생님들 선에서 결정되어야 할 부분들까지 저희가 결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학교의 원래 규칙에 위반되는 행위라던가, 또는 위기 상황일 경우에는 선생님들이 결정을 합니다.

지난 6월 4일에 저희가 물놀이를 가기로 계획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메르스 때문에 부득이하게 취소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학생들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거죠. 학생들이 아무리 걸릴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할지라도, 가능성이 0.1%라도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만약 학생들이 시민총회에서 메르스를 감수하고 수영장에 가야한다는 의견을 통과시킨다면 그 일이 바르지 못해도 실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학생들 다수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고 권한을 주는 것은 학생들에게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고,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시민총회를 진행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이런 회의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평생 자기 의견을 내보며 살아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의견을 말하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고된 일입니다. 생각보다 그런 자리에서 말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낸 의견이 통과 되었을 때의 그 기쁨을 아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의견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시민총회와 비슷하게 아힘나평화학교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자기계발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자기계발 시간은 분명히 학교 프로그램에 속해있지만 이것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이 아닌 자기가 스스로 배우고 싶은 분야를 집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아이는 기타를 치기도 하고, 드럼을 치기도 하며,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강제하는 것은 없지만 단지 그 시간을 열심히 보내라는 것 하나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 학기동안 자기가 선택한 그 분야를 열심히 하고, 어떤 방식이 되었든 한학기가 끝나는 날 발표를 합니다. 하지만 그 발표의 퀄리티는 제각각입니다. 정말 한 학기동안 열심히 노력한 친구의 발표는 멋지지만 그냥저냥 시간을 때우면서 보낸 아이들의 발표는 형편없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노력여하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자신의 책임인 것이죠.

대안학교들 일수록 ‘책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되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사회시간에 공부를 하다보면 자유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고 배우지 않습니까? 많은 대안학교들은 학생들에게 거의 최대치에 가까운 자유를 줍니다. 이런 자유 때문에 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 일수록 방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 생각에는 너무 많은 자유가 갑자기 주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와는 다른 자유로움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것은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대안학교에 대해 갖는 편견을 갖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대 다수의 학생들은 정말 순수하고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놀던 애들이 대안학교에 왔을 때 처음 보여주는 모습이 밖에 보여 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이 대안학교를 문제아들의 학교로서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거의 모든 대안학교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학생 내적인 부분으로 돌아와서, 개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부분은 모두가 같이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것이죠.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실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청소년에게 금지되어 있는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술이나 담배와 같은 것들이죠. 사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자유가 주어진 학생들이 나쁜 길로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대안학교에서 자주 있습니다. 항상 어떤 통제 속에서 살아온 아이들이 급작스러운 자유를 맛보았을 때 좋지 않은 길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죠. 대안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미션은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2010년에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힘나평화학교는 기숙학교이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는데,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저를 비롯한 친구들은 꽤 힘들어 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 고등학생 형들 사이에서 같이 지내야 했으니까요. 아마 대부분의 신입생들이 학교에 와서 처음 배우는 것이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집에서는 겪지 못한 압박감이 저희를 누르고 있죠. 이런 이유로 아힘나의 6년 생활을 군대와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한 사람들 중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말이죠.

학교에 들어와서 가장 처음 배웠던 것은 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는 꽤 많은 대안학교들이 있지만 각각의 대안학교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성격이 제각기 다릅니다. 제가 들어가서 중점으로 배웠던 것은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누군가의 노력으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 서울 수유에 있는 국립 4.19민주묘지에 가서 4.19에 대해 공부하기도 하고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국립 5.18민주묘지에 가서 5.18 민주항쟁에 대해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보다 조금 전 역사인 일제강점기에 대해 배우기 위해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다니다보니 그때서야 조금 다른 생각이 났습니다. ‘아 내가 다른 애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구나!’ 다른 애들과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약간씩 대화의 주제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기숙사에 살고 있고, TV나 핸드폰을 못하는데,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 예를 들면 네이트 판과 같은 곳에서 쓰는 용어들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 아이들과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역사 활동을 다닌다고 해서 기본적인 학교생활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 밖으로 나갔다 오는 것은 단 한순간의 경험일 뿐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활동들과 비슷하게도 저희 학교에서는 매년 꾸준히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연탄봉사입니다. 매년 겨울, 혼자 사시는 어르신 분들을 찾아가 저희가 연탄을 배달해 드리는 작업입니다. 사실 연탄을 그냥 나르기만 해도 그 분들에게는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우리가 마련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봉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 어르신들을 위해 또 북한에서 살면서 추위에 벌벌 떠는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의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걷따! 프로젝트’입니다. 이 걷따!는 ‘아이들은 걷고, 한반도는 따뜻해지고’의 준말입니다. 저희 학생들이 몇 킬로씩 걸을 때 마다 연탄 1장씩을 기부를 받아 총 120km를 걸어서 수천 장의 연탄을 마련해 보자라는 캠페인 이었습니다. 실제로 DMZ 120km를 모든 아이들이 다 걸은 후에 학교가 있던 동네의 시내에 나가 홍보도 하고, 대학교에 가서 후원도 받고, 시민단체에도 들려서 성공적으로 캠페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자신 스스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자기가 직접 모금활동을 하면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부턴 더욱 많은 활동들을 이어갔습니다. 여러 촛불시위에도 참여하기도 했고, 2011년 발생한 일본 관동지역 대지진으로 후쿠시마의 원전이 폭발했었습니다. 3~40여년 전인 1970년대에는 소련의 체르노빌 이라는 지역에서도 원전이 터진 전례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30년 전에 터진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사진) 아주 끔찍한 사진들이 많죠. 정말 심각해 보이는 사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런 원전이 일본에만 수십군데가 있어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있습니다. 일본은 그나마 원전을 튼튼하게 짓고, 도시에서 더 떨어진 곳에다 짓기라도 했습니다만, 한국에 고리원전은 엄청나게 낙후되어 있습니다. 이미 수명이 다 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계속해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이 원전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부산시민 300만 명이 방사능에 직접 노출되는 엄청난 사고가 발생할 것입니다. 지금 퍼진 메르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사람들이 사망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위험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저희는 일본에서 오신 분들과 저희 학교 학생들 그리고 한국의 가수들을 모아서 한일 평화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주된 주제는 2011년 3월 11일 날 일어났던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의 피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희들은 과연 우리가 저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저와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물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보니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유가족 분들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는 잊고 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이 사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저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희가 가수도 아니고 노래를 정말 못 부릅니다만,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학교의 밴드동아리가 가서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단지 저희는 그들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했을 뿐인데, 유가족 분들은 어린 자식들을 보는 것 같아 계속해서 울음을 터뜨리시는 모습에 굉장히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계속해서 하다가 보니,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듭니다. ‘아 이 세상에는 상식과는 반대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구나. 이런 세상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겁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시키지 않더라도 이런 사회적 문제가 일어났을 때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또 이런 것들을 계속 겪으면 들게 되는 마음이 ‘남을 돕고 싶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계속 말했듯이 학교 다니는 6년 내내 봉사활동을 엄청나게 많이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봉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활동들을 계속 하다보면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좀이 쑤십니다. 여러분들은 공부가 몸에 익었을지는 모르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안학교 학생들은 공부라는 소리를 들으면 앉아있지도 않았는데 엉덩이가 근질거리거든요. 그런 학교생활을 6년이나 하다 보니 아무래도 머리 쓰는 일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가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 큰 행사가 있을 때나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 때 한두 달 정도 교과 공부를 아예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책을 들여다보면 뭔가 알 수 없는 문자들만 가득하지요.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정말 집중해서 공부하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매년 말에 있는 연구보고서입니다. 이 과정은 저희 학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대안학교들이 가지고 있는 모토 중에 하나가 기존의 공교육처럼 국,영,수,사,과 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학교에 딱 오게 되면 의외로 실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아 여기는 내가 원하는 것을 12시간 내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어떤 학생의 경우는 ‘저는 대안학교에 밴드부를 하러 왔습니다. 만약 제가 밴드부를 못 들어간다면 저는 학교를 나갈지도 모릅니다.’ 이런 친구도 있었어요. 하지만 학교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곳이 아니죠.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그것을 절제하는 마음, 그리고 학교의 가치관을 배우려는 마음이 잘 조화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지금 그 친구는 지금 밴드부에서 탈퇴하여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있습니다. 이렇듯 학교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꿈을 이루어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로를 설정하게 해주는 것은 가능하죠. 연구보고서를 쓰는 시간도 그런 시간입니다. 처음에 학생들이 연구보고서를 쓰기 전에 자신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설정합니다. 그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정말 많은 생각과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주제를 잡고 글을 쓰게 되는 것이죠. 쉽게 말하자면 대학교의 논문과 같은 형식을 띄게 됩니다. 이런 글들을 처음 써보는 중학교 1학년생의 경우는 아직 모자라지만 귀엽게 글을 쓰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대학생 수준의 글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저희 학교 학생들이 올해 쓴 연구 논문 주제들입니다. ‘정보화 시대 속 빅 데이터의 의미’, ‘세월호 사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 ‘일베에 대한 분석과 이해’, ‘영화 인터스텔라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이론 해설’ 등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한국 프로야구 FA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2011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SNS의 역할’, ‘인도 불가촉천민의 인권문제’, ‘SNS의 악용사례와 그 해결방안’ ‘국제개발협력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 NGO와 시민들을 중점으로’를 연구했습니다. 주제가 굉장히 난잡하고, 이거에 관심이 있었다가 저거에도 관심이 있었다가 하는 경우가 많았죠. 연구보고서라고 해서 꼭 어려운 주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까 말했듯이 내가 재밌게 본 인터스텔라를 더 재밌게 보고 싶을 때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면 그것에 대해 연구해보기도 합니다. 만약 자신이 도저히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 싶으면 책을 읽고 독서보고서를 쓰기도 하구요. 자신이 노래 쪽에 관심이 있으면 작곡으로, 연극 쪽에 관심이 있으면 대본을 완성하는 것으로 대신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나온 성과물들이 두고두고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이죠. 학생들은 자기가 쓴 연구보고서를 가지고 발표를 하게 됩니다. 과연 자신이 작성한 그것이 정말로 자기가 쓴 것인지, 아니면 네이버에서 컨트롤 C와 V를 연타한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함이기도 하고,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발표하고, 남들이 질문하고, 그것에 대해 대답을 하면서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저희가 쓴 연구보고서를 모아 자료집으로 출판을 하고, 홈페이지에도 게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연구보고서를 보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이 홈페이지에 들어와 저희 논문을 보고는 학교에 문의를 하기도 합니다. ‘저희 아이도 여기 학교 가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나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부터 글을 잘 썼던 것은 아닙니다. 연구보고서 쓰기 전만 해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연구보고서가 또래에 비해 잘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만큼 공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또 자신의 미래 진로와도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더욱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이 연구보고서를 쓰기 위해 무려 3달이라는 시간을 들입니다. 이렇듯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결과물을 잘 뽑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깊게 연구를 하다가 보니, 자연스레 그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점점 자신의 진로를 잡아나가면서 학교에 다니는 6년 중 마지막 2년이 되면 저희는 창업과정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제는 졸업 후의 진로를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이죠. 지금은 제가 창업과정에 있습니다. 창업과정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요. 사실대로 말하면, 대안학교 학생들 중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아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걱정 속에 살아가요.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나는 이 대안학교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기 있으면 대학도 못갈 것 같고, 공부도 못할 것 같은데, 과연 여기에서 계속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이런 고민들을 계속해서 하다가 학교를 나가는 아이들도 많고요, 이런저런 고민들 속에서 빠져 살다가 그냥 졸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꿈을 찾아 노력하는 아이들보다 아직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죠. 사실 저도 그런 경우 중에 하나입니다. 대표적으로 저는 중학교에 아힘나에 입학해서 ‘지금 공교육에는 굉장히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공교육은 모든 아이들의 꿈을 대변해 주지 못해요.’ 라고 말을 하고 다녔지만, 저는 그 당시에는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청소년에 불과했고,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정말 많은 활동들을 했지만, 정작 정말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은 찾지 못했습니다. 만약 제가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한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경험만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을 택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공부 외에 한 활동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어찌 보면 여러분과는 정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선택지가 있다 보니 정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이걸 하자니 저게 끌리고 또 저걸 하자니 막상 그렇게 끌리지가 않고, 이런 패턴에 반복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대안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생들이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이제 사회생활에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안학교는 대안이라는 이름 하에 지금껏 경쟁을 피해왔습니다. ‘완전히’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신이나 입시의 경쟁에서 어느 정도 탈피할 수 있었고, 그만큼 다른 것들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것을 용인해주고 기다려주는 곳을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대안학교의 학생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많이 지켜봐왔기 때문에 저만큼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고 싶었고, 이제야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실 그전까지는 이 말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그것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 이 말은 어느 서울대를 간 전교 1등이 한 말이라서 더 화제가 되었었는데요. 그렇지만 전 이 말은 차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최선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사회복지사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내가 하는 일이 이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꿈이 되었죠. 하지만 이미 이런 두루뭉술한 것 보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마련해야 할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발견했습니다. 필리핀의 매우 가난한 지역에 가서 그 지역을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단체에 파견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꿈꾸는 청년 봉사단’ 이였습니다. 이름이 정말 좋더라구요. 저처럼 꿈과 희망이 없었던 학생에게 꿈을 꾸게 해준다니! 저는 지원을 했고, 운이 좋게도 합격되었습니다. 작년 10월에 저는 필리핀으로 떠났죠.

필리핀에서 한 일들은 크지는 않습니다.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동아리 활동을 같이하고, 또 필리핀의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도서관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들은 제가 그때 활동했던 사진들입니다. 아이들이 참 귀여웠어요. 저는 여기서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분명 저는 꿈꾸는 청년 봉사단 이라는 이름으로 다녀왔는데 실제로 저는 남을 돕는다기 보다는 정말 많이 배우고 왔습니다. 봉사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가 굉장히 민망했던 것이죠. 내가 돕지 않아도 그들은 스스로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저는 남을 돕는다는 말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하관계를 만들어버립니다. ‘내가 너를 도와주니까 나는 너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야. 나는 너보다 잘났으니 너를 도와주는 것이야’라는 인식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갖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남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 그리고 아픔들을 이해할 때 그 사람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리핀에서의 6개월을 보내고 지난 4월 달에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어느새 저는 고3이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학생인지라 대학이라는 것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보다도 저를 지켜보시는 제 주위의 어른들의 걱정도 많으셨지요.

저는 현재 고3으로서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가는 길에 대학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학이 필요할까라는 것. 지금은 이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만약 필요하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저는 대학에 꼭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점수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고 싶은 대학과 과가 있다면 재수가 되었든 삼수가 되었든 아예 국내대학이 아닌 해외로 대학을 가든 저는 그것을 개의치 않아 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당장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저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비전을 찾지 못한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단순히 제 경험을 이야기 하러 온 사람일 뿐이고요. 이렇게 대안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살아가고, 여러분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사람이 있지만, 결국 고민하는 것을 보니 대학걱정이든 앞으로 살아갈 걱정이든 생각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또 나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교과공부를 잘하지 못합니다. 수학 문제만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 해요. 그러나 이런 사람도 나름의 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딱 한번 뿐인 삶에서 정해지는 직업, 가치관, 삶 등이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준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면 뭔가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천재소녀 김정윤양의 이야기를 떠올려보게 됩니다. 실제로도 머리가 매우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부모님들의 기대와 자신의 욕심이 겹쳐 허언으로 하버드와 스탠퍼드를 동시 입학했다고 말했던 소녀. 이 사건을 보면서 학벌주의라는 것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꼭 높은 학벌에 들어간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고, 공부를 잘한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공부도 못하고요. 얼굴도 잘생기지도 않았구요. 돈이 많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아마 이원표 교목님께서는 저라는 사람을 불러서 여러분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 사람이지만 결국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선택해 나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공부를 잘 하지 못한다고 이 세상 모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응원하겠고요.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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