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아힘나 겨울캠프

100년 만의 폭설과 연일 이어지는 매서운 강추위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면, 볼이 갈라져버릴 것 같다. 맞바람에 숨도 못 쉬었던 오래 전 어린시절의 추위가 느껴진다.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구슬들로 인해 좀이 쑤셔 늘 밖에서만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  강추위와 잘 씻지않아 손가락사이가 갈라져 피가나도, 'OO야! 노~올자'하며 친구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어느새 문을 열고 쏜살같이 대문을 나선다. 아랫목이 아무리 따뜻하다해도....  

멀쩡한 비닐우산을 연만드는 댓살로 쓰려고 망가뜨린 일이 몇 번이던가?  설 날, 흩어진 가족들 모인다고 이불호청 뜯어 빨아 볕에 널고, 다 마르면 다듬이질하여 새로 갈 준비를 하시는데, 실패 풀어 연 얼레에 되감아 부리나케 산 아래 언덕으로 향해 연을 날려 올린다. 이리저리 바람타고 실을 풀었다 당겼다를 반복하며 하늘 높이 오르는 가오리연, 방패연을 보노라면 아무리 차가운 겨울바람이라 해도 아이들의 부푼 가슴을 얼릴 수는 없었다. 내가 만든 연이 하늘 높이 올라갈 때, 내가 만든 팽이가 쌩쌩 잘 돌아가서 끝까지 버텨 이기면 그 순간만큼은  '참으로 멋진 놈'인 '나'가 자랑스럽다.      

 아, 그 기분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아힘나 캠프 둘째 날이 되었다.

 

아힘나 윤종태 선생님

공직에서는 은퇴하셨지만 아힘나의 마을 역사와 우리문화를 가르쳐 주시는 윤종태 선생님께서 방패연을 만드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신다. 아이들의 마음을 닮은듯, 윤선생님의 연 만들는 설명도 들떠있다. 아이들은 윤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댓살은 종이에 붙이고, 실을 비율에 따라 고정시킨다.   실을 매어 방 안에서 날려 본다. 좌우로 치우쳐 팽글팽글 돌아가지는 않는지, 제법 바람을 맞아 붕 뜨는 느낌이 나면  얼레를 들고 밖으로 향한다. 이 설레는 기분! 가슴이 벅차 오른다. 그러나 아직 함박웃음을 흘릴 때는 아니다.  잘 날아 오늘까?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 속에 한 점이 되어라~~~

자신의 별칭을 '높이나는 연'으로 지은 김현철군의 연이 역시 높이 날았다.  칼바람이 불어오면 연실을 감은 얼레를 주루룩 풀고 이내 다시 줄당김질을 하면 연은 금새 하늘 높이 더 높이 날아 오른다.    

한 쪽에서는 나무를 깍아 팽이를 만든다. 문방구에서 잘 만들어진 팽이를 옆에 놓아두고 색깔만 칠하게 하기도 하지만 제 손으로 나무를 깍아 팽이를 만들고 싶은 친구들은 과감에게 나무칼을 잡아들고 나선다. 썰고 깍고 중심잡고 조그만 쇠구슬을 박아 넣는다. 양 손가락을 펼쳐 팽이를 감싸쥐고 힘있게 돌린다. 떠는가? 아니 잘 돌아간다. 후훗, 성공!!! 그 다음에 팽이채를 만들자. 닥나무 껍질이 있으면 좋으련만...    

다른 방에서는 솟대와 나무 목걸이, 윷과 독특한 윷판도 만든다. 

▲ 나뭇가지로 만든 솟대

 

▲ 솟대를 만드는 아이들

캠프 사흘째 되는 날, 선생님들은 다소 지쳐가지만 아이들은 더욱 더 생생해진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말도 많이진다. 자기를 닫고 살아가던 녀석도 선생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선생님,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 알아요? "

어느형이호랑이와곳감을게속하고
피콜로누나도같이호랑이와곳감을하고
그누나도계속생각이날껌니다저도나긴하지만~

 

아힘나의 선배들 중 몇몇 아이들은  익숙한 통합교육 경험 덕분에 장애친구들을 아주 편안하게 맞이해 준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특별한 재주들에 관심있어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때로는 혼자 있고 싶어하는 마음도 헤아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 보아주기도 한다.

새끼를 꼬아두었던 것을 이어 긴 줄넘기를 하며  마을사람들과 팀웍을 다지고,  구슬치기와 뺑뺑이 돌리기 놀이로 흥미와 긴장을 더해 준다.

 

▲ 추위로 코끝이 빨개지지만 처음하는 겨울철 운동장놀이는 재미있기만 하다.

 

 

 

 

 

▲ 힘나를 걸고 노는 사행성(?) 놀이, 뺑뺑이

아쉬운 마지막 밤이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가 캠프에서 일하며 번 돈 '힘나'를 모아 '원'화로 교환하여 낮시간을 활용해 마켓에 들러 장을 보았다. 마을별로 잘 할 수 있는 요리, 특별한 퓨젼요리를 만들어 손님을 호객한다. 요란스럽다. 그런데 장을 보느라 막상 다른 마을이 준비한 음식을 사먹을 '힘나'가 충분치 않다. 

 

살림산업국의 구직창구가 바빠지고 저금통장에서 예금한 '힘나'를 찾느라 은행이 정신이 없어진다.  "왜 은행이 열리는 시간에는 다들 딴짓하고 가만있다가 갑자기 은행에 와서 은행장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  아힘나 캠프의 최고참인 김규원(아힘나 중등신입생)은행장에게 나이를 불문하고 야단을 맞는다. 

돈이 풀리니 먹거리 축제와 놀거리판이 시끌시끌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컵라면은 먹어 보았어도 컵볶음밥은 처음, 아이디어 상품이다. 참치, 김에 밥을 버무린 주먹밥도 좀 느끼했지만 잘 팔리는 음식이었다.

 

▲ 아힘나 주먹밥

 

▲ 컵라면을 물리친 컵볶음밥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인기음식은 떡볶이와 오뎅이다.  선생님들은 칼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고기를 구워대고 아이들은 익자마자 고기 한접시를 사간다.  벌어놓은 힘나를 먹는 것으로 다 쓸 모양이다.  아마도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 또 밤늦도록 게임을 할 것이다. 아힘나의 마지막 밤은 시간이 짧다.

 

아힘나캠프에서 아힘나아이들이 만든 나무목걸이

이제 3박 4일의 제14차 아힘나 캠프일정을 다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이다.  100년만에 찾아온 강추위라지만 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까지 얼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모두들 자기들이 만든 나무 목걸이를  목에 걸고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지만 발걸음들이 쉬 떨어지지 않는 모양인지 다음 캠프를 기약하였다. 

 

다음 캠프는 2월 봄방학을 기해 열린다. 100년 전, 경술국치를 기억하며 "미래의 역사를 써가는 아이들"이란 주제로 아힘나 역사캠프를 실시한다. 그 때 다시 보자는 아이들, '공부하는 캠프는 머리 아파 안 온다'는 아이들 왁자지껄 소란이 일더니 한 사람이 가고 한 팀이 가고....그렇게 한 시간을 배웅하니 예의 조용한 시골마을로 돌아온다.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강추위로 전국이 꽁꽁 얼었지만 아힘나 아이들의 마음까지 얼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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